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서은국 교수와 서울대학교 법의학교실 유성호 교수가 나눈 대담은, 행복과 죽음이라는 극단의 주제를 교차시키며 현대인의 고립 문제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자본 만능주의의 시대에, 진짜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지 묻는 이 대화는 단순한 강연을 넘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진단하는 텍스트입니다.
돈이 만들어낸 '자기 충만감'이라는 현대적 함정
서은국 교수는 돈을 비타민에 비유했습니다. 비타민 결핍 상태에서는 섭취가 건강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결핍이 해소된 이후에는 백 알을 먹어도 더 건강해지지 않는다는 논리입니다.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본적인 결핍이 해소되는 마지노선을 넘어서면, 추가적인 자본이 행복에 기여하는 이윤은 급격히 줄어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비율로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돈'이라고 답하는 사회입니다.
이 대담에서 특히 주목할 대목은 '자기 충만감(self-sufficiency)'에 관한 심리학 실험입니다. 피험자들에게 돈이 날아다니는 스크린 세이버를 단 3분간 노출한 것만으로도, 타인을 돕거나 타인에게 도움을 받으려는 의도가 모두 감소했습니다. 돈이 인간의 사회적 결핍감을 채워 주는 대체재로 기능하면서, 인간은 '너 없어도 될 것 같은데'라는 생각으로 혼자 사는 삶을 점점 더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원래 인간은 혼자 사냥에 나서기보다 협력해서 먹이를 잡고 나누는 방식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배가 고프면 친구에게 밥을 얻어먹어야 했고, 그 필요가 관계를 유지시키는 생물학적 동기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돈이 있으면 편의점이 그 역할을 대신합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절친 세 명을 대저택에 초대해 경제적 걱정 없이 함께 살게 했지만 그 관계가 오래가지 못했던 일화는, 돈으로 사람의 진심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사용자 비평이 날카롭게 짚었듯, 이 실험이 드러내는 것은 단순히 '돈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도덕적 교훈이 아닙니다. 자본이 개인을 독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유대감으로부터 고립시키는 구조적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보다 냉정한 진단입니다. 쉬었음 청년이 매달 70만 명 이상, 20대 고독사 사례도 늘어나고 있는 현실은 이 진단을 통계적으로 뒷받침합니다. 결국 돈이라는 종목에서 행복 이윤이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 우리는 종목을 갈아타야 합니다. 서은국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속적으로 큰 양의 행복을 제공하는 자산은 결국 사람입니다.
고립을 부르는 '평가 문화'와 사회적 피로도
많은 사람들이 혼자를 선택하는 표면적 이유는 "사람을 만나봤자 스트레스만 쌓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대담이 제시하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 사회 전반에 깊이 내재된 과도한 평가 문화입니다. 서은국 교수는 핀란드와 덴마크 등 행복 지수 상위 국가의 문화를 직접 조사하면서, 그 사회에서 가장 비호감인 유형이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사람'이라는 일관된 답을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이 경험하는 가장 강력한 스트레스 유발 요인 중 하나는 사회적으로 평가받는 상황입니다. 실험실에서 "저 방에 10명이 당신의 발표를 평가할 것"이라는 말 한 마디만으로도 피험자의 혈압이 급격히 상승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인간관계는 만나자마자 평가와 비교가 시작되는 구조입니다. 나이, 직업, 연봉, 외모, 자녀 성적까지 서로의 삶을 끊임없이 수치화하고 서열화합니다. 이 누적된 사회적 피로도가 '차라리 혼자가 낫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합리적인 방어 기제입니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과도한 칭찬마저 일종의 평가로 간주해 경계합니다. 집들이에서 "집이 정말 멋있네요"라고 오버하는 것도 그들에게는 불편한 평가로 받아들여집니다. 칭찬도 평가이고, 비판도 평가이기 때문에, 평가 자체를 과하게 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관계를 편안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서은국 교수는 이를 우리 사회에 빗대어, '우리'라는 단어를 강조할수록 암묵적으로 '너희'를 만들어 편을 가르게 된다고 지적합니다. 내집단 중심 문화가 강할수록 낯선 사람과 가볍고 즐겁게 상호작용하는 훈련이 부족해지고, 결국 만나도 재미없는 관계가 되어 버립니다.
사용자 비평이 지적한 대로, 고립의 책임은 고립된 개인에게만 있지 않습니다. 누군가 사람을 만나기 두렵다고 할 때, 그 사람을 만나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즐거운 존재인지를 먼저 돌아봐야 합니다. 외로운 사람이 관계를 끊어 낸 데에는 그를 둘러싼 환경과 문화가 절반의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2010년대 이후 소셜 미디어의 확산으로 비교의 공간이 전방위로 펼쳐진 것, 화폐 경제로의 전환으로 가치가 수치화된 것,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전 세대에 걸친 은둔을 낳고 있습니다. 유성호 교수가 강조했듯, 혼자 사는 것과 고립되어 사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고립은 알코올 남용, 면역 기능 저하, 폐렴 같은 질환에 대한 취약성 증가로 이어지는 실질적인 의학적 문제이기도 합니다.
완벽주의의 역설과 '항구의 배'가 주는 실존적 교훈
유성호 교수는 자신이 부조리한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거창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도, 완벽한 행복을 달성하지 못해도, 그저 "뚜벅뚜벅 앞을 향해 걷는 것" 자체가 삶이라고 말합니다. 이 관점은 완벽주의라는 현대인의 고질적 함정과 직결됩니다.
서은국 교수는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성향이 성공을 이끌 수는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지속적인 고통을 유발한다고 분석합니다. 무엇을 해도 만족하지 못하고, 완벽하지 않을 것 같아 시작 자체를 회피하는 패턴은 결국 인생에서 경험의 폭을 스스로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습니다. 서은국 교수가 인용한 시게히로 오이시 교수의 개념 '심리적 풍요로움(psychological richness)'은 이 지점에서 중요합니다. 행복과 삶의 의미, 이 두 가지만이 인생의 목표가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통해 파란만장하지만 풍성한 삶을 사는 것 자체도 가치 있는 선택지라는 것입니다.
12개국 비교 연구에서 한국인이 "더 다양한 경험을 해보지 못한 것"을 가장 많이 후회한다는 결과는 이를 뒷받침합니다. 우리는 늘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며 그 답을 향해 규격화된 삶을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정작 주마등이 흐를 그 순간, 돌아보게 되는 것은 명함 위의 성취가 아니라 함께 라면을 끓여 먹던 기억, 선생님께 같이 맞던 중학교 친구와의 시간입니다.
유성호 교수가 인용한 '항구에 묶인 배' 비유는 이 대담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배는 항구에 묶인 배이지만, 배는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평가받을까 두렵고, 관계에서 상처받을까 무서워 방 안에 머무는 삶은 가장 안전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본질에 맞지 않습니다. 서은국 교수는 나가기 전에 예측하는 어색함이나 피로감이 실제보다 과대평가되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를 근거로, "나가보면 생각보다 재밌을 수 있다"는 작은 제안을 건넵니다. 이것이 고립이라는 질병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처방입니다.
이 대담은 현대인의 고립을 개인의 성격 문제로 축소하지 않고, 자본 만능주의와 평가 지배 문화가 낳은 구조적 부산물로 진단합니다. 사용자 비평이 정확히 포착했듯, 진정한 행복의 필요 조건은 풍성한 사회적 관계이며, 그 관계는 돈이나 완벽한 조건이 아닌 일상 속 소소한 즐거움의 압정을 깔아나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집니다. 항구를 떠나 파도를 만나는 용기, 그것이 고립을 넘어서는 첫걸음입니다.
[출처]
한석준의 지식인 초대석 합석 / 서은국 교수·유성호 교수 출연:
https://www.youtube.com/watch?v=u9k_hhIgOS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