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7대 한국은행 총재를 역임한 이창용 서울대 특임교수가 슈카월드의 새 팟캐스트 프로그램에 출연해 환율 정책의 철학적 기반부터 대한민국 구조 개혁의 난제, 노동시장 유연성의 필요성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경제 현안을 논했습니다. 이 글은 그 핵심 내용과 비평적 시각을 함께 정리합니다.
환율 변동성을 둘러싼 오해와 소신
이창용 교수가 한국은행 총재 재임 기간 동안 가장 억울했던 비판 중 하나는 "금리를 충분히 올리지 않아 유동성이 풀리고 환율이 올랐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취임 당시인 2022년 4월 정책 금리가 1.5%였던 것을 불과 8개월여 만에 2023년 1월 3.5%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역대 한국은행 총재 중 가장 단기간에 가장 큰 폭의 금리 인상을 단행한 총재라는 사실은 종종 간과됩니다.
그가 더 강하게 주장하는 것은 '환율 변동성 수용'에 관한 철학입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채무국이 아닌 채권국이며, 1997년 외환위기 당시처럼 국가 부도 위험이 환율 변동으로 발생하는 구조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국민 다수는 환율이 오르면 즉각적인 정부 개입을 요구하고, 이는 올바른 통화 정책 수행을 방해합니다. 이 교수는 주가 변동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환율 역시 금융 상품의 가격 변수로 인식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한미 통화 스왑에 대해서도 그는 명확한 선을 그었습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스왑을 제공하는 조건은 세 가지입니다. 글로벌 달러 쇼티지의 존재, 이머징 마켓의 불안, 그리고 그 불안이 미국 소비자와 기업에 영향을 미칠 것. 2022~2023년 한국의 환율 급등은 이 세 조건 중 어느 것도 충족하지 않았습니다. 스왑을 받지 못한 것이 능력 부족이 아니라 객관적 상황의 문제였다는 설명입니다.
사용자 비평의 관점에서 보면, 환율 변동성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이론은 경제학적으로 타당하지만 현실의 충격을 오롯이 서민이 부담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원화 가치가 급락하면 수입 원자재 가격 및 생필품 물가가 직접 오릅니다. 변동성을 수용하는 정책 철학이 아무리 정교해도, 그것이 국민에게 '방치'로 느껴지는 순간 정책 신뢰는 무너집니다. 이 교수 스스로도 총재 재임 시절에는 이 괴리 때문에 말을 아낄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습니다. 당위와 현실 사이의 이 간극을 좁히는 일이 다음 세대 정책 담당자들에게 남겨진 숙제입니다.
구조 개혁이 막히는 이유: 부동산·교육·입시
이창용 교수는 반도체 슈퍼사이클로 인한 수출 호황이 대한민국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저출산·고령화, 수도권 집중, 부동산 가격 과열, 입시 경쟁 과열은 수십 년에 걸쳐 쌓인 문제이며, 세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저절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부동산 문제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명확합니다. 대한민국의 부동산 문제는 '전국 부동산 문제'가 아니라 '수도권 부동산 문제'입니다. 지방은 이미 가격 하락과 공동화가 진행 중인 반면, 수도권의 특정 지역으로 인구와 자본이 집중되는 것이 핵심 원인입니다. 그리고 그 수도권 집중의 중심에는 교육 프리미엄이 있습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이슈 노트에 따르면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이 주요 대학에 진학할 확률은 지방 학생의 세 배에서 네 배에 달합니다.
이 교수는 지역 비례 선발제 도입을 해법으로 제시했습니다. 지역에 따라 입학 문호를 균등하게 배분하면 강남에서의 입시 경쟁 유인이 줄어들고, 수도권 집중 완화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또한 분양가 상한제가 '국민 로또'화되어 특정 지역 부동산에 대한 수요를 비정상적으로 자극하는 문제, 정책 금융이 오히려 부동산 가격을 올리는 악순환 구조도 지적했습니다.
세제에 관해서는 보유세는 올리고 거래세는 낮추는 방향이 원칙적으로 맞다고 했습니다. 다만 이 방향이 효과를 내려면 여야 합의 아래 최소 5년에서 10년 이상 일관되게 추진되어야 합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뒤집히는 현재의 구조에서는 어떤 세제 개편도 시장 신뢰를 얻기 어렵습니다.
사용자 비평 측면에서 지역 비례 선발제와 세제 개편은 방향성에서는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하지만, 실행 과정에서 기득권 집단의 저항이 매우 큽니다. 강남 지역 학부모들의 반발, 다주택 보유자들의 조세 저항, 건설업계와 연결된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습니다. 이 교수 스스로도 구조 개혁의 실현 가능성에 회의적임을 인정했습니다. '좋은 처방'과 '실행 가능한 처방'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정치적 리더십의 부재가 가장 큰 장벽이라는 점에서, 경제학적 해법보다 정치 시스템의 개혁이 선행 과제일 수 있습니다.
노동시장 유연성과 AI 시대의 세대 갈등
이창용 교수가 가장 정치적 비용이 큰 개혁 과제로 꼽은 것은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입니다. 그는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로 노동시장을 분류했습니다. 인사이더는 현재 노동시장에 진입해 정규직과 노조의 보호를 받는 집단이고, 아웃사이더는 새로 진입하려는 청년층과 비정규직입니다. 문제는 현행 제도가 인사이더 보호에 과도하게 설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정년 연장 논의가 대표적입니다. 정년을 연장하면서도 임금 구조를 유지하려는 현재의 방향은 2015년에도 같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당시 정년이 55세에서 60세로 연장된 직후 청년 실업률이 오르고 결혼율·출산율이 급격히 하락했습니다. 기업이 늘어난 인건비 부담을 신규 채용 축소로 메웠기 때문입니다. 정년 연장이 오히려 청년층의 노동 기회를 박탈하는 역설이 발생한 것입니다.
AI 도입이 청년층에게 불리하다는 통념에도 이 교수는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AI를 가장 잘 활용하는 것은 막 사회에 진입한 젊은 세대입니다. 임금이 성과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되고 조직 재편이 가능한 기업이라면 AI를 잘 다루는 청년을 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연공서열에 의한 임금 구조와 사실상 불가능한 정리해고 제도 아래에서는, 기업들이 AI 활용 청년을 채용하는 대신 기존 중간 관리자층을 유지하는 선택을 합니다. 결과적으로 청년층이 AI 혁명의 수혜자가 되어야 할 구조가 오히려 피해자를 만들어내는 것은 AI 기술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시장 제도의 경직성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사용자 비평의 관점에서, 이 교수가 제시한 노동시장 유연성 해법은 이론적 설득력이 높습니다. 그러나 '정리해고 유연화'와 '임금 성과제 도입'은 노동조합이 가장 강하게 반대하는 의제입니다. 대기업 노조를 중심으로 한 인사이더들의 조직적 저항과, 비정규직 문제에 민감한 진보 정치 세력의 연대가 맞물리면 현실적 추진이 어렵습니다. 성과급을 n분의 1로 나누는 현행 관행이 '무슨 성과급이냐'는 이 교수의 지적은 정확하지만, 그것을 바꾸는 데 필요한 정치적 합의를 어떻게 끌어낼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로드맵은 여전히 공백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창용 교수의 발언은 재임 중 말할 수 없었던 소신을 가감 없이 드러낸 점에서 높은 가치를 지닙니다. 변동환율제 수용, 구조 개혁의 초당파적 합의,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라는 세 축은 대한민국 경제의 근본적 체질 개선을 위한 핵심 과제임이 분명합니다. 다만 처방의 논리적 정합성과 실행 가능성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것은 경제학자가 아닌 정치 시스템의 몫입니다.
[출처]
슈카월드 팟캐스트 1화 / 이창용 前 한국은행 총재 출연: https://www.youtube.com/watch?v=2hUkTmwYm3A&t=297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