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행정부의 재등장 이후 세계 경제는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한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거시경제 전문가 오건영 작가는 개별 기업의 역량만큼이나 매크로 환경이 투자 결과를 좌우한다고 강조합니다. 이 글에서는 그의 통찰을 바탕으로 공급망 변화, K자형 양극화, AI 생산성 혁명이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현재 세계 경제의 구조적 전환을 심층 분석합니다.
공급망 패러다임의 전환: 'Just-in-Time'에서 'Just-in-Case'로
오건영 작가는 거시경제를 이해하는 핵심 비유로 축구 경기의 홈경기·원정경기 개념을 제시합니다. 손흥민 선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더라도, 멕시코 홈경기이며 고산지대 2,000m에서 경기가 열린다면 판도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처럼 거시경제 환경은 개별 기업의 역량이 발휘되는 조건 자체를 규정합니다. 홈경기라고 반드시 이기지 않고, 원정 경기라고 반드시 지지 않지만, 그 환경이 승패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 관점을 공급망에 적용하면, 현재 세계는 매우 중요한 패러다임 전환의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사태는 단순한 지정학적 사건이 아닙니다. 이 사건은 이란 스스로에게도, 전 세계에게도 '초크 포인트'의 실질적 위력을 입증한 전례가 되었습니다. 오건영 작가는 이를 두고 "다음에도 또 사용해야 할까?"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생겨날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인도네시아 에너지 장관이 말라카 해협 통행료 논의를 꺼낸 사례에서도 드러나듯, 초크 포인트를 보유한 국가들의 협상력은 이미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 흐름은 기업과 국가들이 재고 관리 전략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2012~2014년 경영학 교과서에서 정답으로 가르쳤던 'Just-in-Time(적시 생산)' 방식, 즉 재고를 최소화하고 필요할 때 공급받는 전략은 세계화가 안정적으로 작동하던 시대의 산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공급망이 언제든 막힐 수 있는 오늘날, 에너지 비축량을 6개월분 유지하는 중국과 2개월분에 그치는 대만의 차이는 단순한 효율성이 아닌 생존 전략의 차이로 읽힙니다.
재고 비축이 늘어나면 관리 비용과 금융 비용이 증가하고, 이는 고스란히 제품 원가에 반영됩니다. 결과적으로 소비자 물가가 상승하고 인플레이션이 구조화됩니다. 세계화가 역행할수록 'Just-in-Case(만약을 대비한)' 방식이 새로운 표준이 될 것이고, 이는 곧 자원 부국의 협상력 강화, 에너지 가격 상승, 그리고 'Higher for Longer(더 오래 높은 금리)'라는 거시경제 환경으로 이어집니다. 오건영 작가가 제시한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프레임으로 보자면, 이 공급망 패러다임의 전환은 과거의 저물가 시대와 단절을 예고하는 불연속점일 수 있습니다.
K자형 양극화가 통화 정책에 던지는 딜레마
K자형 경제는 단순한 빈부 격차가 아닙니다. 오건영 작가는 이 구조가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 자체를 근본적으로 무력화하는 메커니즘을 만들어낸다고 진단합니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나스닥 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엔비디아를 필두로 한 M7 빅테크 기업들은 영업이익률 30~40%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기업들에게 4%의 금리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영업이익률이 40%인 기업에게 4%의 이자 비용은 오히려 공격적 설비 투자를 독려하는 신호로 작용할 뿐입니다.
그러나 같은 시간, 뉴욕에서는 조란 맘다니라는 민주적 사회주의자 정치인이 '감당 가능성(affordability)'이라는 단어 하나로 하원의원에 당선됩니다. 물가는 높고 월세는 치솟는데 임금 인상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미국 서민 경제의 현실이 이 단어 하나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연방준비제도(Fed)가 두 현실에 동시에 맞춤형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연준은 금리를 올리거나 내릴 수밖에 없고, 그 방향이 어느 쪽이든 한쪽에는 타격이 가해집니다. 오건영 작가의 표현처럼, 총알은 하나인데 토끼는 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국도 동일한 딜레마를 경험했습니다. 강남 아파트 시장이 과열되어 있던 시기에도 한국은행은 2월과 5월 두 차례 금리를 인하했습니다. 실물 경기 침체와 소비 성장률 부진, 남부 지방 대형 산불로 인한 성장률 타격 등 K자형 하단의 고통이 그만큼 심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용자 비평이 정확히 지적한 대로, 교과서적 원칙이 실제 정책 결정에서 얼마나 복잡하게 굴절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자본주의 경제는 구조적으로 양극화가 심화되는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다만 그 속도가 지나치게 빠를 때 견제 장치가 작동하는 것입니다. 현재 K자형 양극화는 미국 내 빅테크 대 서민, 수출 대기업 대 한국 내수 경제, 그리고 미국 대 비(非)미국이라는 세 겹의 구조로 동시에 작동하고 있습니다. 통화 정책이 이 모든 층위를 동시에 치유할 수 없기에, 오건영 작가는 재정 정책의 선별적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AI와 같은 K자형 상단 산업에 국가 역량을 집중하는 산업 정책 역시 필연적으로 강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AI 생산성 혁명: 부채 문제 해법이냐, 새로운 인플레이션 뇌관이냐
오건영 작가가 제시하는 다섯 가지 갈림길 중 가장 복합적인 화두는 AI 생산성 혁명입니다. 미국의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부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본질적으로 두 가지입니다. 부채를 줄이거나, 성장을 키우거나. 그런데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사례가 증명하듯, 부동산 거품을 잡겠다는 이유로 갑자기 돈줄을 죄면 성장이 무너지는 속도가 빚을 갚는 속도보다 훨씬 빠릅니다. 결국 부채의 절대 규모는 줄어도 GDP 대비 부채 비율은 오히려 악화되는 역설이 발생합니다.
그렇다면 남은 길은 성장을 통한 부채 희석입니다. 하지만 단순한 수요 자극형 성장은 물가 상승을 유발하고, 이는 금리 인상으로 이어져 다시 부채 부담을 키우는 악순환을 만듭니다. 여기서 오건영 작가가 제시하는 유일한 해법이 바로 생산성 향상입니다. 노동 투입 대비 산출을 획기적으로 높이면, 물가를 올리지 않으면서 성장률을 높이는 것이 가능합니다. 중앙은행은 물가가 안정적이면 금리를 올릴 이유가 없고, 낮은 금리가 유지되면서 강한 성장이 지속되는 선순환이 형성됩니다. 1990년대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인터넷 혁명이라는 기술 혁명을 근거로 금리 인상을 거부하며 '팍스 아메리카나'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사례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파월 연준 의장 비판과 케빈 하셋으로의 교체는 바로 이 맥락에서 읽혀야 합니다. 케빈 하셋은 생산성을 강조하는 인물로, 트럼프 행정부는 AI 혁명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관세발 일시적 인플레이션을 상쇄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밀고 있습니다. 관세는 해당 연도에만 가격을 올리고, 이듬해에는 동일 세율이 유지되므로 전년 대비 물가 상승률은 0으로 수렴한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오건영 작가는 인플레이션을 '잡초'에 비유하며 그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2021년 3월 이후 약 5년째 2% 목표치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으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9.1까지 치솟았다가 2.5까지 내려온 물가가 다시 3.5로 반등하는 '라스트 마일' 문제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사용자 비평이 날카롭게 지적했듯, AI 혁명이 장기적으로는 물가를 낮추는 생산성 효과를 가져오더라도, 단기적으로는 대규모 데이터 센터 구축에 필요한 반도체·원자재·전력 수요 급증이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는 역설이 존재합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가격 상승이 이미 이 흐름과 맞물려 있습니다. AI라는 어항을 설치했다고 해서 물고기가 바로 들어오지는 않습니다. 오건영 작가의 통발 비유처럼, 장기적으로 유망한 곳에 어항을 놓고 묵묵히 기다리는 투자 철학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거시경제를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내 투자와 일상을 둘러싼 거대한 환경을 읽는 일입니다. 오건영 작가의 분석은 공급망 패러다임 전환, K자형 양극화, AI 생산성 혁명이라는 세 축이 서로 깊이 얽혀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용자 비평이 지적한 것처럼, 개인 투자자를 위한 미시적 실행 가이드라인이 보완된다면 더욱 완성도 높은 거시 분석이 될 것입니다. 밀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젓고, 통발을 올바른 자리에 놓는 지혜가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투자자의 덕목입니다.
[출처]
오건영 작가 인터뷰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RVzQm3EsKZ0